空に輝くよキラリ星がじわり滲んでくよ

CNC

6月 告解

2019. 7. 20. 23:28

 

 

 

 

 

 

 "그것은 나의 업보이며 또한 영겁의 시간을 지나 나에게로 돌아온 것이니, 이 또한 모두 내가 받아들여 마땅한 일입니다…."

 

 …하지만 선생님. 그것이 저에게 남겨진 불안하고도, 또 완벽한 것임을 알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나는 두렵습니다. 나의 사명, 곧 내가 여기까지 살아온 이유. 선생님. 제가 다음생에도 같은 삶을 짊어진다면 나는 어찌해야 합니까. 결단코 이번이 마지막일거라며 꾸역꾸역 살아온게 전부 부질없는 일이 된다면 나는 어찌해야 합니까. 마지막이, 마지막이 아니라면 나는 어떡하면 좋습니까, 선생님.

 

 카르마. 업보. 그걸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그였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 할 과거부터 그는 속죄의 길을 걸었다. 뉘우칠 수 있다면 뭐든 좋았다. 자신이 어째서 이리 살아야 하는지는 이제 어찌 되었든 상관없다. 그래서 그는 다시 한 번 삶을 손에 쥘 때마다 가장 조용히 기도를 올릴 수 있는 직업을 택했다. 어느 곳에서 태어나도 종교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늘 자신이 택한 종교에 죄책감을 느꼈다. 불순한 의도로 택한 신앙심이었기 때문에.

그가 자신이 업보라고 부르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깨달은 건 다시금 생명을 되찾은지 세번째의 일이었다. 선생님. 그는 힘들때마다 그의 호칭을 뇌까렸다. 선생님. 인간들, 그러니까 우리들의 우매한 모습을 죽을 때까지 지켜보고, 죽어서도 다시 살아나 지겹도록 반복하는 일이 정말 저의 업보가 맞았을까요. 선생님, 그렇다면 저를 말려주시지 그러셨어요. 이 또한 선생님의 선택이니 이견은 없습니다만. 그렇지만 원망 따위는 하게 해주십시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 산업화가 이루어지기 한참 전이었던 것 같다. 지금 말하면 미친놈 취급받을 발언이지만, 마력魔力은 존재한다.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는 업보라는 이름의 저주를 받을 수도 없었을 테니까. 마지막으로 들은 말이 무엇이냐 하면 참으로 악의에 찬 모습이었다.

 

“네 그리도 나 아닌 다른 이를 마음에 담으려면 부디 그의 종말까지 지켜보라. 네 사람을 한없이 사랑한 나머지 결국 너 홀로 남아 고독을 만끽하라.”

 

따지고 보면 나는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저주를 받은 셈이 된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오해가 가장 큰 축이 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내게 영원한 저주를 건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 허나 여지는 남겼을지도 모른다. 그는 힘들때 손을 내밀어준 나에게 감사의 마음도 잠시 연모를 가슴에 품었다. 나로써는 그의 감정을 받아줄 수 없었다. 남모를 감정은 이미 선생님에게 쌓아올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자신이 사랑하는 이가 타인을 사랑한다는 건 아주 괴로운 일 일거란 건 안다. 알면서도 어찌 할 도리는 없다.

 

사람을 구원으로 삼지는 말라고 했다. 안다. 다들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다. 이해한다고 해서 그걸 안 하는건 아니다. 자신의 구원자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는 엇나간 것이다. 그가 구원을 바라고 나에게 찾아았을 때 나는 선생님과 시간을 보내고 있었기에. 그 뒤로 그는 실연에 빠져 밤낮을 피폐하게 살았다. 그리고 딱 10일째 되는 날, 그는 사랑해 마지 못했던 내게 찾아와 저주를 걸었다. 그리고 그의 저주대로 나는 머지않아 선생님의 처참한 마지막을 눈에 담았다. 내게 저주를 건 이는 이미 죽고 없다. 아무도 나의 저주를 풀 수 없다.

 

나는 그날로 목숨을 끊었다.

 

 


 

 

 

… 결국 나홀로 남아 고독을 만끽하라는 말은 단순한 악담인줄로만 알았습니다, 선생님. 제가 선생님이 아닌 그를 연모했다면 선생님은 제 명에 살고 가셨을까요. 저는 이 끔찍한 세상에서 종말을 향해 달려가는 인간들을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될 수 있었을까요. 영겁의 세월이 지나면 저주는 약해지고 나는 삶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내가 그 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무언가 바뀔까도 싶지만 돌아가도 나는 선생님을 다시 한 번 사모했을 테니 소용은 없겠지요. 누가 나의 저주를 풀어주겠습니까. 누가 나의 고통을 대신 짊어져 주겠습니까. 내가 그를 사랑하지 않았던건 사실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 것일까요. 내 삶 하나하나가 모두 업보로 돌아온 것일까요.

 

선생님, 나의 선생님. 선생님이라고 부르게 된 건 온전히 나에게 살아가는 즐거움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 해보면 그러한 선생님을 잃고 살아가는 고통만을 얻은 것이 웃음뿐이 나오기만 합니다.

 

선생님. 다음 생에는 부디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저는 저주에서 풀어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몇 번을 반복한 이 생, 어딘가에 당신이 다시금 태어나 존재해, 그렇기에 이 저주는 풀어지지 않은 것이겠지요. 만난다면 결국 당신을 또 한 번 사모하고 말테니, 저는 이 고해古海에서 질릴만큼의 같은 이야기를 반복합니다. 마음을 가볍게 하기 위한 하소연 따위만을 당신에게, 그것도 수백년을 주어 죄송합니다. 이번에야 말로 부디 당신의 곁으로 가고 싶습니다.

 

바다로 걸었다. 바짓단이 소금물로 젖어 들어감을 느끼며 무거운 몸을 이끌었다. 바다에 녹아들 듯 몸을 맡겼다. 이 바다에 선생님이 녹아있고 수 백개의 내가 녹아있습니다. 짧은 문장 하나를 내뱉곤 차가운 수중에서 눈을 감았다.

 

그래, 이건 나의 고해苦海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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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완성
귀엽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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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 전신
뭔가.. 삽화로 쓰려고 그렷던 공아선
책자에 넣을거라 새로 그린 잘생긴 공아선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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